2024년 4월 1일은 우리나라에서 고속철도가 개통한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4번째 국가로 이름을 올렸고, 전국이 2시간대 생활권으로 연결됐다. 무엇보다 고속철도 개통을 계기로 한국의 철도 기술과 운영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를 기념하고자 특집으로 고속철도 건설 준비부터 현재까지를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① TGV 탑승과 고속철도 건설계획

② 세계의 고속철도 (1)

③ 세계의 고속철도 (2)

④ TGV 차량 선정과 기술도입 일화

⑤ 고속철도 건설ㆍ운영의 주역들

⑥ 부실시공 논란 끝 단계별 개통

⑦ 시험선 운영과 고속철도 1단계 개통까지

⑧ 전 국토의 고속철도 시대


[철도경제신문=반극동 대전·세종 본부장] 본격적으로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충북 청원군 오송읍에 오송 궤도차량기지를 건설했다. 1단계 시험선 건설에서 사용할 장비와 궤도용 레일을 제작ㆍ공급하는 공사용 전초기지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 시험선을 유지관리하는 조직이 새로 생겼다. '한국철도건설공단 중부사무소 시설관리단'이란 조직인데, 대부분 철도청에서 파견 온 직원들이었다. 1998년 하반기부터 선발대로 투입됐는데 전기ㆍ통신ㆍ신호와 시설분야 직원들이었다. 당초 시험선 요원으로 100명을 선발했고 프랑스 SNCF에서 연수까지 마쳤는데 실제 시험선에 파견된 직원 중에는 시험선 교육생이 일부 포함됐지만, 대부분 다른 인원으로 구성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고속선 관련 조직에 파견되는 것을 선호되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현장 유지보수요원들이 파견됐다. 1, 2차에 걸쳐 계속 인력을 증원했는데 필자가 파견된 2002년 7월에는 그 인력이 70여 명이었다. 서기관급 1명, 사무관급 3명도 있었다. 그 후 시험선 운영요원은 100명을 넘었으며 2003년 초반에는 150명까지 증원되어 그 인력이 이후에 고속철도 전기ㆍ시설사무소의 일원이 되었다. 2003년 말에는 전기 89명ㆍ통신 40명ㆍ신호 55명ㆍ관리 6명ㆍ시설 35명 등 총 226명이었다. 

파견된 인력은 한국고속철도공단의 소속이었다. 주 업무는 시험선 시설의 유지관리였다. 2002년 7월 어느 날 천안에 내린 폭우로 건설 중인 천안아산역 일부가 물에 잠겼다. 임시로 설치한 배수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천안아산역 일대는 물바다가 돼 버렸다. 또 하필 역사 지하에 있는 전기실이 침수돼 서비스 전원을 공급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기실을 2층으로 이전했고 배전반 등은 긴급 구매해 재설치했다.

2003년 7월에는 전차선 작업을 마치고 정리하던 중에 전철 모터카가 천안북연결선 분기기에서 '할출'하는 사고가 발생해 고속선에 설치된 노즈 가동 분기기를 교체해야하는 일까지 있었다. 2003년 하반기부터 협력관의 직책으로 부이사관급 간부가 파견돼 월 1회 공단 본사의 협력회의를 시행하기도 했다. 중부사무소의 주요 임무는 시험선의 KTX 시운전이었는데 이와 더불어 시승 행사도 함께했다. 시승 행사에는 주요 내빈과 기자단, 개인 신청자 등이 참석했는데, 오송 기지 북측 운주터널 입구에 시승용 승강장을 만들어 운영했다.

2003년 11월에야 고속선 운영 주체가 철도청으로 결정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공단은 건설이 완공되면 운영까지 하려는 의도를 계속 보여 파견된 철도청 인력과 사소한 갈등이 계속 있었다. 드디어 관보에 고속철도 운영기관인 오송전기ㆍ시설사무소가 신설되었고, 그해 12월 18일 김세호 철도청장을 모시고 고속철도 유지보수를 하기 위한 오송전기ㆍ시설사무소 개소식을 현지에서 열었다. 철도청 본청에도 고속철도 운영부서들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고 고속철도 승무사무소, 고양고속철도차량정비단 등도 함께 조직되었다.

한편 시험선은 1999년 12월 중순에 34.4㎞를 성공적으로 건설하였고 2002년 10월에 57.2㎞까지 연장했다. 이후 시험선에 KTX 차량이 투입돼 안정성과 시스템 간 상호연계 시험에 돌입했다. KTX 1호차는 프랑스 현지에서 생산해 자체 증속 시험을 그쳐 시속 300㎞ 시운전을 성공리에 마쳤다. 또 KTX 2호차로 시험선에 투입하여 시속 200㎞로 각종 시험을 시행하여 2000년 6월에 시속 300㎞ 증속시험을 마쳤다.

또한 2002년에 시험선 구간 완공으로 단계별 증속시험을 프랑스에서 파견 온 기술자와 시험선 요원으로 투입된 공단ㆍ철도청 인력과 차량제작사 기술자들이 합동으로 노반ㆍ궤도ㆍ전차선ㆍ신호ㆍ차량 등 분야별로 시행했다.

대전 이남의 신설선은 순조롭게 건설됐다. 충북 영동군에 궤도기지를 만들었고 마지막 터널로 영동터널(1720m)이 2001년 4월에 관통됐다. 이에 앞서 최장터널인 황학터널(9975m)이 1999년 11월 5일에 관통됐다. 그리고 광명역ㆍ천안아산역ㆍ고양 차량기지가 순조롭게 건설돼 2004년 4월 1일 역사적으로 한국고속철도를 개통할 수 있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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