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와 관련된 비사를 꺼내는 <2번 출구> 연재가 진행됩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철도와 관련된 과거와 현재의 비사를 통해 미래의 철도 정책 등에서 배울 점 또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도쿄메트로 도자이선의 '도쿄 최동단역'인 카사이역 1층에 위치한 지하철박물관의 모습. / 박장식 객원기자
도쿄메트로 도자이선의 '도쿄 최동단역'인 카사이역 1층에 위치한 지하철박물관의 모습. / 박장식 객원기자

[철도경제신문=박장식 객원기자] 지하철 박물관.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선진화된 도시철도를 운영한다고 콧대를 높인 대한민국이지만, 수장고와 전시 공간 등을 갖춘 제대로 된 '지하철 박물관'은 아직 서울은 커녕 한국에 없다. 일본의 도쿄, 중국 상하이에 지하철 박물관이 개장한 것과는 다르다.

물론 시도는 있었다. 2001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소재한 학여울역에 두 층 규모로 열겠다며 야심차게 준비했던 서울의 지하철 박물관. 하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며 지하철 박물관은 이따금 시도되고는 있다만 추진력을 얻지 못하는 아쉬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런 지하철 박물관, 사실 장대한 계획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도쿄 지하철의 9개 노선을 담당하고 있는 '도쿄메트로'가 외곽지역인 에도가와구 카사이역 구내에서 운영하는 지하철 박물관에 해답이 있다. 고가역사인 카사이역 1층의 절반 남짓을 쓰고 있는 이 박물관은 규모나 외관보다도 좋은 구성과 콘텐츠면 충분히 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도쿄메트로 지하철 박물관에 전시된 '동양 최초의 지하철 차량', 긴자선 1001호 전동차. / 박장식 객원기자
도쿄메트로 지하철 박물관에 전시된 '동양 최초의 지하철 차량', 긴자선 1001호 전동차. / 박장식 객원기자

규모 크지 않아도..."동양 첫 지하철 역사 한눈에"

한 정거장만 더 가면 지바현으로 넘어가는 도쿄도의 동쪽 끝에 있는 도쿄메트로 도자이선의 카사이역. 2층에는 승강장과 선로가, 1층에는 역사와 부대시설이 있는 평범한 전철역처럼 생겼다. 그런 카사이역 하부의 부대시설 중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지하철 박물관이다.

지하철 박물관의 연면적은 3535㎡. 나고야에 있는 '리니어 철도관' 내지는 사이타마 철도 박물관처럼 큰 규모를 자랑하는 다른 철도 박물관만큼 넓은 면적은 아니다. 잰걸음이면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전체를 둘러볼 수 있지만, 전시물이나 체험시설만큼은 알차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하야카와 노리츠구(早川徳次)의 흉상이다. 1914년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가 지하철에 꽂혀 도쿄에 동양 첫 지하철, 지금의 긴자선을 만든 이른바 '지하철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를 위한 존경의 표식이다. 하야카와 노리츠구의 흉상과 일대기는 자신의 소장품과 함께 지하철 박물관을 찾는 이를 먼저 반기는 역할을 한다.

물론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지하철 국영화 정책이 펼쳐지면서 도쿄 지하철도 사장에서 사실상 반강제로 물러난 탓에 화병을 얻어 1년 만인 1942년 생을 마감했지만, 하야카와 노리츠구가 그의 딸에게 말했다던 '언젠간 도쿄 안이 거미줄처럼 지하철로 둘러쳐지는 날이 꼭 올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그가 80년 전 현재의 모습을 예상한 통찰력에 놀라게 된다.

긴자선 1001호 전동차 옆에는 1927년 개통 당시의 우에노역 승강장이 재현되어 있다. / 박장식 객원기자
긴자선 1001호 전동차 옆에는 1927년 개통 당시의 우에노역 승강장이 재현되어 있다. / 박장식 객원기자

하야카와 노리츠구의 흉상 옆에는 커다란 차량 두 대가 눈에 띈다. 왼쪽에는 도쿄 두 번째 지하철인 마루노우치선 개통 당시 운행했던 차량이, 오른쪽에는 동양 최초의 지하철인 긴자선의 개통 때 운행을 시작한 '동양 최초의 지하철 차량', 긴자선 1001호 열차가 있다.

특히 긴자선 1001호 열차 옆에는 1927년 개통 당시의 긴자선 종점인 우에노역 승강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한 기분도 든다. 당대 붓글씨로 적었던 '우에노' 표지판부터 당대의 광고는 백 년 전 도쿄의 지하를 옮겨온 것 같다.

긴자선을 시작으로 각 노선의 개통과 관련된 소장품을 관람하고 나면 지하철 건설, 그리고 유지보수에 대한 전시가 이어진다. 보선차 실차를 전시한 것이나 전차선 정비 과정을 미니어처로 담은 것도 신기하지만, 지하철도 공사에, 특히 연약지반이 많은 도쿄에서는 필수적으로 쓰이는 실드 공법 장비를 지상에 그대로 재현한 모습은 입이 떡 벌어진다.

이어 지하철의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는 '여객 서비스' 섹션에서는 관제 장비 등을 체험해 볼 수 있고, '지하철 차량의 구조' 전시에서는 팬터그래프와 모터 등 가까이에서 보기 어려웠던 지하철 차내 장비를 눈앞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도 얻어갈 수 있다. 각 섹션이 크지 않은 탓에 전시물이 많지는 않지만 알차다는 느낌이 대번에 드는 구성이다.

실드 공법에 쓰이는 드럼이 실물에 가까운 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 박장식 객원기자
실드 공법에 쓰이는 드럼이 실물에 가까운 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 박장식 객원기자

'체험'부터 '굿즈'까지...알찬 박물관

전시 섹션을 지나자 체험을 위한 공간이 나온다. 지하철을 주제로 한 디오라마를 관람할 수 있는 시설부터 퇴역한 기관사와 함께 도쿄 지하철을 직접 운행해 볼 수 있는 운전 체험시설이 눈에 들어오는데, 운전 체험시설은 실제 치요다선 등에서 운행했던 전동차의 전두부를 그대로 떼어서 옮긴 점이 놀랍다.

일본어가 짧아 체험이 어렵더라도 '인증샷' 정도는 찍기 충분하다. 긴자선에서 운행했던 차량의 전두부를 그대로 떼어서 옮긴 열차 안에는 기관실 장비가 그대로 있어, 열차 안에서 포즈만 잘 잡고 있다면 '기관사의 꿈을 이룬' 사진을 열차 안팎에서 실감이 나게 찍을 수도 있다.

관람과 체험을 모두 마치고 나가는 길에는 뮤지엄샵이 있다. 단순히 구색을 갖추기 위해 갖다 놓은 굿즈가 아닌, 철도의 특성을 살리는 데 집중한 굿즈가 꽤나 많다. 마킹 테이프나 자, 필기구, 젓가락 등의 길쭉한 굿즈도 많고, 각 노선의 상징을 활용한 상품도 눈에 띈다.

특히 도쿄메트로 무제한 이용권을 이용해 박물관을 찾았다면 리플렛 등의 기념품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홀더 역시 챙겨준다. 올 때는 가볍지만, 굿즈와 기념품, 그리고 꽤 많이 머릿속에 들어가는 경험과 배움으로 무겁게 돌아가는 알찬 관람을 했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과거 운행했던 전동차의 선두부와 운전실을 활용해 '지하철 체험' 장비를 만든 도쿄 지하철 박물관. / 박장식 객원기자
과거 운행했던 전동차의 선두부와 운전실을 활용해 '지하철 체험' 장비를 만든 도쿄 지하철 박물관. / 박장식 객원기자

크고 웅장할 필요 없다...'지하철 역사 50년' 한국도 필요해해

도쿄메트로 지하철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이러한 지하철 박물관을 큰 규모로, 도심에, 화려하게 지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도쿄 지하철 박물관은 구태여 이곳을 찾은 관람객이 아니라면 훌쩍 지나갈 수도 있을 정도로 수수하고, 접근성도 그리 좋지는 못하다.

하지만 박물관의 역할은 단순히 관람객을 끌어모으기 위함이 아니다. 주제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사료를 모으는 역할을 하고, 그 주제와 관련된 자료가 손실되지 않도록 보존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체계적으로 수행한다는 중요한 임무를 안고 있다. 주제와 관련된 학술적인 탐구 기회 제공도 박물관이 수행하는 업무다.

올해로 벌써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 지하철의 역사와 관련된 업무는 잘 되고 있을까. 광화문역에 조촐하게 마련된 '지하철 역사관'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엄격한 조도에 따라 관리되어야 할 인쇄 자료들이 쨍한 지하철의 조명 아래 있고, 상주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도난이나 분실 위험도 분명히 있다.

당장 지하철 개통을 알렸던 역사적인 열차, 1001호는 전문적인 보존 관리 대신 기지에서 일상적인 관리를 받는 등 실물 자료의 보존 면에서도 아쉬움이 크다. 지하철 박물관이 주체적으로 나서 전문적으로 보존해야 할 개인 자료나 지하철 현장에서의 유구도 많다.

도쿄 지하철 박물관의 연면적은 국내 대다수의 국공립ㆍ시립박물관보다도 좁다. 하지만 충분히 알찬 전시를 만들었고, 많은 사료를 모았다. 규모나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서울에서도 어엿한 지하철 박물관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지하철 개통 50년을 맞은 지금, 만들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한국에서 지하철 박물관이 추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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