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열차 몇 분 늦었죠?’ 시간에 집착한 언론 속보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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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극 기자
기사입력 2020-10-25 [17:36]

▲ 장병극 기자     ©철도경제

[철도경제=장병극 기자] “00일 0시 0호선 00역에서 지하철이 고장으로 멈춰서면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포털에서 지하철 고장으로 검색하면 수 많은 기사들이 검색된다. 대부분 통신사 發 속보성 기사가 처음 올라온 이후 사진과 문구만 조금 바꾼 유사한 내용들이다.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열차 운행 장애 등은 ‘속보’로 쓰기 좋은 요릿감이 돼버렸다. 다른 것은 별로 따지지 않는 분위기이다. 사고 경위와 내용 등을 파악하기보다도 오직 ‘몇 분’ 동안 멈춰 섰는지가 핵심이다.

 

여기에 덧붙이는 내용은 승객의 불편이다.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귀를 인용해 “또 고장이다”, “출근(혹은 퇴근)길인데 망했다”는 식의 문구들이 속보성 기사의 내용에 들어간다. 너무 도식적인지라 실제로 취재를 했는지도 의심이 갈 때가 있다. 

 

철도사고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고속·전동열차는 10분, 일반·여객열차는 20분, 화물·기타열차는 40분 이상 계획된 시간표보다 지연되는 경우에 이를 ‘운행장애’로 분류한다. 엄밀히 말해 관련법 상 ‘사고’로 분류하지 않는 사례들도 많은데, 기사에서 다루는 표현은 제각각인지라 ‘지연’, ‘사고’ 등의 단어 등을 혼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모 철도 운영 기관 관계자를 만나 후일담을 들어 보니 보도 행태는 더욱 심각했다. 철도사고나 지연 등 운행 장애가 발생했을 때 관할 기관과 상관없는 곳에 전화해 다짜고짜 왜 사고가 났나며 따지듯 물어보는 경우는 익숙한 일이라고 한다. 

 

또 다른 운영기관의 관계자는 “그나마도 물어보는 것은 사실을 확인하려는 ‘취재 의사’라도 있는 것이다”며 “최소한의 취재도 없이 속보라는 타이틀을 달고 거의 동일한 기사들이 포털에 도배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더군다나 이러한 속보성 기사들은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후 운행장애나 고장이 왜 발생했는지 깊이 있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그냥 소나기처럼 쏟아내다 그친다. 

 

열차 운행 장애 혹은 사고 기사들의 현주소이다. 이렇다 보니 언론이 가진 ‘견제’라는 기능도 이상하게 작동된다. ‘시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대응하는 기관 입장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열차가 몇 분이나 늦어졌나'이다.

 

물론 이용객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복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언론사가 시간만 쫓다 보니 운영기관에서도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일단 빨리빨리 수습하는게 우선이다. 

 

우연히 모 언론의 기사를 접하고 놀란 적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이 유독 운행 장애의 기준이 높아, 열차가 조금만 늦어도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진 나머지 정시성은 지킬지언정 오히려 안전은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 철도의 ‘정시성’에 대해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열차의 정시성은 승객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타 교통수단과의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정시성도 안전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 

 

열차도 하나의 운영시스템인데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언론사들도 ‘시간’에만 목맬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응 매뉴얼대로 침착하게 조치가 이뤄졌는지 확인할 일이다. 이후 동일한 사고들이 반복된다면 원인을 찾아 취재하는 것이 순서다.

 

지금처럼 시간을 쫓는 보도 행태가 지속된다면 이용객들은 ‘지연 등 열차 운행 장애가 발생하는 것=무조건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오히려 언론이 나서 열차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꼴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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