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식의 2번출구] 전산화 이전에는… ‘아찔’ 명절 귀성길

추석 귀향길 열차, ‘인터넷 예매’ 16년… 그 이전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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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식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0-09-29 [19:07]

= 매월 15일과 30일, 철도와 관련된 비사를 꺼내는 <박장식의 2번 출구> 연재가 진행됩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철도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해 미래의 철도 정책 등에서 배울 점, 또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철도경제=박장식 객원기자] 자차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이상, 명절 연휴만 되기 전 치르는 하나의 ‘의식’이 있다. 이른바 ‘대규모 수강 신청’이라 불리는 명절 추석 표 예약. 아침이면 졸린 눈을 부릅뜨고 고향으로 최대한 덜 부대끼고 빠르게 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약하는 모습은 이젠 명절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하나의 전령사가 된 것만 같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추석 귀성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귀성하더라도 열차 좌석의 절반가량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열차를 이용한 귀성을 피하는 사람들도 늘었지만, 그래도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지 한국철도와 SRT의 예매 때에는 대기 시간이 길게 늘어지는 등 예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귀성길, 귀경길 열차의 인터넷 예매가 2004년 시작된 이후, 벌써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지도 벌써 16년이 흘렀다. 그 이전에는 전화로 어렵게 기차표를 예약하거나, 기차역을 찾아가 엄청난 인파를 뚫고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겨우 표를 얻어야만 했다. 

 

▲ 지난해 서울역 추석 귀경길 모습. 올해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좌석의 절반만 사전 예매했다.     © 철도경제

 

◆ 해방 이후 시작된 ‘귀성길’

 

이른바 ‘귀성길 대란’의 역사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6.25 전쟁 이후부터 교통부 등에서 추석에 대비해 열차를 증결하는 등 이용객이 본격적으로 늘어났고, 넘치는 이용객을 감당하지 못해 본디 입석을 받지 않는 특급열차에서 입석 표를 팔기도 했다. 

 

인터넷도 없고, 전산도 없었던 시절에는 매번 주요 기차역에서 장사진을 이루어야만 기차표를 살 수가 있었다. 앉아가기 위해서는 전날 밤부터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지켜야만 했고, 서서 가는 것마저도 내려가는 전날쯤이면 표가 동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러다 보니 입석 표를 초과 발매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던 중 1960년 설날을 앞두고 비극적인 사고가 터졌다. 1월 26일 한밤 중, 서울역에서 출발해 목포까지 가는 완행열차를 타려던 승객들이 잇따라 넘어지며 계단에서 31명이 뒤엉켜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원인은 서울역에서 표를 너무 많이 팔았기 때문이었다. 

 

한 량에 80명까지 팔 수 있는 입석 표를 량당 200명에 육박할 정도로 팔았고, 개찰하면 자리를 잡기 위해 뛰어가야만 했던 당시 상황으로 인해 사고가 커졌다고 당시 언론은 전한다.

 

이 사고는 당시 동아일보가 선정한 1960년의 10대 뉴스에 오를 정도로 큰 사고였지만,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미약했다. 당시 서울역 여객 주임만이 책임을 물어 금고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이후에도 사고가 벌어졌던 플랫폼은 그대로 열차에 앉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뛰어가는 등 비슷한 모습이 펼쳐졌다. 여러모로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민들을 울린 것은 암표에도 있었다. 특히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 특급열차의 좌석표는 암표상들의 놀잇감처럼 전락했다. 당장 역 광장에서는 암표상이 서너 배 비싼 값에 표를 들이미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철도청 직원이 무려 500여 표의 암표를 팔다 덜미를 잡히는가 하면, 암표 조직이 직원을 협박해 표를 공급받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져 혀를 차게끔 했다.

 

▲ 한국철도(코레일)의 추석승차권 사전예매 시스템 메인화면.      © 철도경제

  

◆ ‘전산발매’, ‘전화’, 이제는 스마트폰 예매까지

 

1980년대까지 사람들은 귀성길이면 전쟁과도 같은 고향길 위에 올라야 했다. 고속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고속버스의 소요 시간이 긴 데다가, 아직은 차량 보급률이 높지 않아 귀성 방법은 사실상 열차뿐이었다. 

 

다행히도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철도 표를 전산 발매하기 시작하면서, 출발하는 기차역 외에도 전산발매기가 설치된 다른 역이나 여행사에서도 추석과 설날 기차표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전산화가 철도 전반에 이루어지게 되면서 일반 기차표는 전화로도, PC통신으로도 예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1990년 철도청은 철도회원 가입자를 대상으로 전화로 명절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게끔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당시 철도회원에 가입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지만, 역에 가지 않고도 열차를 예매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전화가 먹통이라는 불만, ‘일반 회원들에게 차별적’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자 2년 만에 서비스가 중단되는 촌극을 겪기도 했다.

 

2000년대가 지나고, 2004년이 오자 12년 만에 집에서 명절 열차표를 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바로타’ 서비스를 이용해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살 수 있게 된 것. 

 

이 제도는 많은 대기 시간과 높은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기차표를 살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지금까지도 ‘명절의 수강 신청’이라는 별명이 붙은 채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2020년에는 코로나19와 맞물려 사상 처음으로 창구 예매 없이 명절 기차표를 예매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제는 추석, 설날 기차표를 컴퓨터 앞에 붙어있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예약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기차역에서, 기차 안에서 북새통을 거쳐야만 기차를 예약할 수 있고, 자리에 앉을 수 있던 과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기술이 발달하는 현장을 명절마다 구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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