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식의 2번출구] 철도 기술 '광복’ 알린 조선해방자호

광복 후 최초 "우리 손으로 만든 기차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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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식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0-08-18 [13:12]

= 매월 15일과 30일, 철도와 관련된 비사를 꺼내는 <박장식의 2번 출구> 연재가 진행됩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철도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해 미래의 철도 정책 등에서 배울 점, 또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철도경제-박장식 객원기자]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물결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하지만 여러 전문기술 분야에서는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곤 했다. 관리직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일본인 관리자들이 한반도를 도망치듯 떠났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철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났다.

 

공착장에서도 열차를 만드는 핵심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던 한국인 노동자들. 그들은 일본인들이 떠난 공착장을 그저 바라만 보아야 했다. 열차 운행 역시 녹록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공출로 적지 않은 수의 기관차들이 녹여져 총탄이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열차들을 2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정상 운행하기에는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힘을 합쳤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하나씩 내놓으면 열차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1년 동안 영등포와 인천의 공착장에서 노동자들이 힘을 합쳤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만든 기차가 45년 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경부선 위를 내달린 것이다. ‘해방 제1호’ 기관차와 ‘조선해방자호’의 탄생이었다.

 

▲ 한국인의 기술로 처음 태어난 조선해방자호의 모습.  © 철도산업정보센터

 

◆ 서울에서 부산까지 9시간 20분… 조선 해방의 상징

 

해방 이전, 경부선은 동경과 바로 연결되는 ‘아카츠키 호’가 운행되었다. 1930년대 운행한 이 열차가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데 걸린 시간은 6시간 40분. 이 열차는 부산잔교를 통해 시모노세키에서 동경과 대륙을 가장 빠르게 오고가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당대 일본의 최신기술이 대거 투입되었다. 하지만 기관차를 짓고, 객차를 만드는 기술은 당시로써는 고급 기술로 취급되었기에, 핵심 기술은 일본인의 손에 있었다. 

 

당시 철도회사들은 조선인의 고용 비율을 3분의 1 정도로 제한했다. 그마저도 난순 노무 등에 종사케 했기 때문에 기관차를 만들고, 열차를 운영하는 등 핵심적인 부분에 참여하기에는 더욱 큰 제한이 있었다. 그런데 해방이 되기가 무섭게 그 기술을 가진 일본인들이 모두 떠나버렸으니, 열차를 만드는 단계부터 난관이었다.

 

당시 내노라 하는 기술자들이 영등포공착장에 모였다. 일본인의 감시를 피해 기술 서적을 탐독하고, 일본인들이 열차를 만드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하나씩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게 열차를 만들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드디어 이들이 만든 첫 기관차의 모습이 눈앞에 드러났다. 열차의 이름은 ‘해방 제1호’, 그렇게 태어난 해방 제1호는 1945년 12월 27일 영등포공착장에서 수원을 오가는 시운전에서 첫 번째 기적을 울렸다.

 

‘해방 제1호’는 5개월에 걸친 시운전을 거친 뒤, 새로 신조된 객차를 연결했고 마침내 ‘조선해방자호’가 탄생했다. 이듬해 5월 20일 미군정과 운수부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개통식을 성대히 갖고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운행을 시작했다.

 

순수 국내 기술로 처음 만들어진 조선해방자호는 우등객차와 1등석, 식당차를 갖춘 호화객차를 견인하고 운행을 시작했다. 이 열차의 운행 시간은 천안, 대구 등 주요역만 서고도 9시간 20분.

 

이후 조선해방자호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경부해방자호, 서울과 목포를 오가는 ‘서부해방자호’로 운행하게 됐다. 이 열차는 ‘삼천리호’와 ‘무궁화호’로 바뀌어 한국전쟁 이전까지 운행되었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며 운행이 중단, 그대로 폐지된 것으로 여겨진다.

 

◆ 일제의 속도를 뛰어넘기까지

 

▲ 일제의 속도를 처음으로 뛰어넘은 재건호의 모습.  © KTV 국민방송

 

이후에도 일제의 속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국의 기술 원조를 받아 여러 열차를 만들었고, 이들 열차는 전쟁 이후 복구를 겸한 선로 개량이 맞물려 더욱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서울과 부산의 시간적 거리를 가깝게 만들었다. 

 

1960년 개통된 무궁화호는 일제강점기 당시 특급열차의 속도를 회복했다. 무궁화호는 서울과 부산을 6시간 40분에 주파했다. 1962년에는 인천공착장에서 만든 ‘국산 열차’인 재건호가 개통했다. 재건호는 서울과 부산 사이를 6시간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달렸고, 시속 100km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넘기는 등 특기할 기록도 많다. 이 속도는 1965년 재건호가 서울~부산 운행 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하며 자신의 속도를 뛰어넘기에 이른다.

 

지난 8월 15일은 일흔다섯 번째 광복절이었다. ‘일제가 달성했던 속도를 되찾는’ 철도의 소요 시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런 이야기가 단순한 광복의 기쁨을 넘어 다시 태극기를 되찾은 사람들이 그 이후 어떻게 극복해나갔나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조선해방자호와 재건호와 같은 소중한 열차들과 관련된 사료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 운행되었던 객차나 기관차는 흔적도 없고, 운행 당시의 헤드마크를 비롯한 자료들 역시 남아있지 않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가 더욱 많이 발굴되기 위해서라도 철도에서의 유물 보존, 사료 확보 등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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